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선린인터넷고등학교 야구부 (문단 편집) === 1981년 이후 === 1981년 이후 2015년 이전까지 [[선린상고]]-[[선린인터넷고]]는 고교무대 메이저 대회에서 4번의 준우승에 머물렀다. 1989년 [[장재중]]-[[서용빈]]-[[인현배]]가 이끄는 전력은 강해보였지만, 황금사자기 결승에서 우승에 한이 맺힌 [[인천고등학교 야구부|인천고]]에게 졌다. 1991년 봉황대기 결승에서 당대 최강의 전력을 자랑한 [[신일고등학교 야구부|신일고]]에게 패하면서 준우승, 1992년 청룡기 결승에서 [[공주고등학교 야구부|공주고]]의 [[노장진]]에게 역사상 최초의 결승전 [[노히트 노런]]의 굴욕을 당하며 준우승[* 당시 선린의 에이스는 좌완투수 심영호였으나 단국대 진학 후 야구를 그만두었다.], 1995년 [[경헌호]]를 앞세워 봉황기 결승에 올랐지만, [[충암고등학교 야구부|충암고]]의 에이스 [[박명환]]의 벽을 넘지 못하고 패하면서 준우승.[* 4-3으로 지고 있던 9회초 선린상고 선두타자가 2-유간을 타고 넘어가는 안타성 타구를 충암고 유격수가 잡아 1루로 던졌고 아웃 판정을 받았다. 그러나 [[비디오 판독]]이 있을리 만무한 때였고 슬로우 모션으로 보면 세잎이었다. 결국 관중석에서 관객 1명이 난입하고 관중들이 오물을 그라운드로 투척하며 게임이 20여분간 중단됐다.] || 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youtube(ot9ndo6YiBQ)]}}} || 물론 전력은 나쁘지 않았다. 1998년과 1999년에는 에이스 [[권오준]], 포수 정종수[* 현 KBO 심판], 내야수 [[손시헌]], 외야수 [[이종욱]]을 바탕으로 한 전력으로 4강에 거푸 진출했고, 그 뒤로도 [[윤희상]], [[고창성]] 같은 좋은 선수들이 출현해 간간히 4강에 올랐다. 하지만 그들은 끝내 결승 진출에는 실패했다. 비록 과거의 화려함까지는 아니지만, 다행히도 급작스러운 몰락이 아니라 다소 부침을 겪는, 그리고 일종의 불운이 겹친 상태라는 점이 [[선린인터넷고]] 야구부에게는 위안거리다. [[파일:/image/410/2015/06/29/20150629_1253579_99_20150629210610.jpg]] 2015년 [[황금사자기]]에서 각각 [[한국프로야구/2016년/신인드래프트|2015년 신인드래프트]]에서 [[두산 베어스]]와 [[LG 트윈스]]의 1차지명을 받은 [[이영하(야구선수)|이영하]]와 [[김대현(1997)|김대현]]을 앞세워 20년 만에 전국대회 결승에 진출했고 35년만에 황금사자기를 품에 안았다. 이번 우승은 선린인터넷고등학교로 교명 변경 후 첫 우승이었다. 2017년 [[고교야구 주말리그]] 전반기 서울A권에서 우승을 거머쥐었다. 주말리그 시행 후 7년만의 우승이었다. 그러나 [[윤석환]] 감독이 떠난 2018년부터는 암흑기를 보내고 있었다. 절치부심한 끝에 2022년 황금사자기에서 4강에 진출했으나 경남고에 패했고 경남고는 결승전에서 청담고에 승리를 거두며 우승을 차지했다. 2023년 2년 연속 황금사자기 4강에 진출했다. 준결승에서는 8년 전 결승에서 만났던 [[대구상원고등학교 야구부|대구상원고]]에 접전 끝에 11-7로 승리하며, [[강릉고등학교 야구부|강릉고]]를 꺾고 올라 온 [[부산고등학교 야구부|부산고]]와 겨루게 됐다. 그러나 비로 이틀이 순연된 결승에서 3-12로 대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